[Paper Review] 2차원 반데르발스 자성 물질
Magnetism in Two-Dimensional van der Waals Materials

리뷰 논문 첫 페이지. Magnetism in two-dimensional van der Waals materials, Nature 563, 47–52 (2018). doi.org/10.1038/s41586-018-0631-z
Kenneth S. Burch (Boston College), David Mandrus (Univ. of Tennessee / Oak Ridge National Lab), Je-Geun Park (교신저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 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 — Nature 563, 47–52 (2018)
들어가기 전에: 자석은 어떻게 자석이 되는가
이 리뷰를 이해하려면 먼저 자석이 자석인 이유부터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다.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따라올 수 있도록 필요한 개념만 차례로 쌓아보자.
전자 하나하나가 아주 작은 자석이다
전자는 전하뿐 아니라 스핀(spin)이라는 성질을 갖고 있다. 스핀은 전자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막대자석, 혹은 나침반 바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바늘은 위(↑) 또는 아래(↓) 같은 방향을 가진다.
대부분의 물질에서는 전자들이 짝을 이루며 스핀이 서로 상쇄되지만, 철(Fe)·크롬(Cr)·망간(Mn)·니켈(Ni) 같은 원소는 짝을 이루지 못한 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원자 하나하나가 작은 자석처럼 행동한다. 이 리뷰에 등장하는 물질들(CrI₃, FePS₃, Fe₃GeTe₂ …)의 이름에 하나같이 이런 원소가 들어가 있는 이유다.
이웃한 스핀끼리 방향을 맞추려 한다: 교환 상호작용
원자마다 작은 자석이 있다고 해서 물질 전체가 자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바늘이 제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 전체적으로는 상쇄되어 아무 자성도 드러나지 않는다.
물질이 자석이 되려면 이웃한 스핀들이 서로 방향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 이 경향을 교환 상호작용(exchange interaction)이라고 부르고, 그 세기를 흔히 J(또는 J_ex)로 표시한다. 교환 상호작용은 양자역학적 효과(파울리 배타 원리와 전자 사이의 전기적 반발)에서 나오는데, 여기서는 이웃끼리 방향을 맞추게 만드는 힘 정도로만 이해해도 충분하다. 맞추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대표적인 자기 배열이 생긴다.
- 강자성(ferromagnetism): 이웃 스핀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정렬 (↑↑↑↑). 냉장고 자석처럼 물질 전체가 뚜렷한 자화(M, 단위 부피당 자석의 세기)를 갖는다.
- 반강자성(antiferromagnetism): 이웃 스핀이 번갈아 반대 방향으로 정렬 (↑↓↑↓). 내부적으로는 질서정연하지만, 서로 상쇄되어 겉으로는 자화가 거의 0이다.
온도는 질서를 흔드는 적이다: 열적 요동
온도가 높다는 것은 원자와 전자가 그만큼 격렬하게 흔들린다는 뜻이다. 이 무작위한 흔들림을 열적 요동(thermal fluctuation)이라고 한다. 교환 상호작용이 스핀들을 정렬시키려 하는 동안, 열적 요동은 스핀 방향을 제멋대로 흩뜨린다.
그래서 자성체는 온도에 따라 상태가 바뀐다. 충분히 차가우면 교환 상호작용이 이겨서 스핀이 정렬되고, 뜨거워지면 요동이 이겨서 스핀이 무작위가 된다(이 무질서한 상태를 상자성(paramagnetism)이라고 한다). 둘 사이가 뒤바뀌는 온도를 강자성체에서는 퀴리 온도(T_C), 반강자성체에서는 네엘 온도(T_N)라고 부른다. 물이 0 °C에서 얼음이 되듯, 자성체는 T_C나 T_N에서 자기적으로 얼어붙는 상전이를 겪는다.
자기 질서(long-range magnetic order)란
이제 이 글의 핵심 용어를 정의할 수 있다. 장거리 자기 질서(long-range magnetic order)란, 물질 한쪽 끝의 스핀 방향만 알면 아주 멀리 떨어진 반대쪽 끝의 스핀 방향까지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스핀 배열이 시료 전체에 걸쳐 일관된 상태를 말한다.
비유를 들어보자. 경기장 관중이 카드섹션을 한다고 하자.
- 단거리 질서만 있는 경우: 바로 옆 사람끼리는 대충 비슷한 색 카드를 드는데, 몇 줄만 건너가도 전혀 다른 색이 된다. 가까이서 보면 무늬가 있는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아무 그림도 안 보인다.
- 장거리 질서가 있는 경우: 경기장 전체가 하나의 그림을 이룬다. 한쪽 구석의 색을 보면 반대편 구석의 색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장거리 질서가 생긴 상태다. 아래에서 말하는 2차원에서 자기 질서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곧 원자 한 층 두께의 물질이 진짜 자석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자석은 원래 2차원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Mermin-Wagner 정리: 2차원 자석은 불가능하다?
1966년 물리학자 Mermin과 Wagner는 이론적으로 놀라운 결론을 증명했다. 이것이 Mermin-Wagner 정리다. 조건을 붙여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 스핀이 연속적으로 아무 방향이나 가리킬 수 있고(연속 회전 대칭성),
- 상호작용이 가까운 이웃끼리만 작용하며(단거리 상호작용),
- 물질이 2차원 이하라면,
절대영도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온도에서는 장거리 자기 질서가 존재할 수 없다.
조건 하나하나를 풀어보자.
연속 회전 대칭성이란 “스핀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든 에너지가 똑같다"는 뜻이다. 교환 상호작용은 이웃끼리 방향을 맞추라고만 할 뿐, 어느 방향으로 맞추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스핀이 북쪽을 가리키든 동쪽을 가리키든, 혹은 그 사이 어느 각도를 가리키든 에너지가 똑같다. 방향을 아주 조금씩, 연속적으로 돌려도 아무 차이가 없으니 연속 대칭이다.
그런데 스핀들이 결국 어느 한 방향을 골라 정렬한다는 것은, 원래 동등했던 무수한 방향 중 하나를 “골랐다"는 뜻이다. 이를 대칭성 깨짐(symmetry breaking)이라고 한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누구 쪽 냅킨을 쓸지 정해져 있지 않다가, 한 사람이 오른쪽 냅킨을 집는 순간 모두가 오른쪽을 쓰게 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장거리 자기 질서란 곧 이런 대칭성 깨짐이 시료 전체에서 일어난 상태다.
왜 2차원이 문제인가: 스핀파 이야기
모든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상태를 떠올려 보자. 여기서 스핀 방향을 아주 조금씩 기울여, 긴 파도처럼 천천히 변하는 물결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스핀파(spin wave)라고 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연속 대칭성이 있으면, 파장이 길수록 스핀파를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가 0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이웃한 스핀 사이의 각도 차이가 거의 없으니 교환 상호작용 입장에서는 거의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즉 거의 공짜로 만들 수 있는 요동이 존재하고, 절대영도만 아니면 열적 요동이 이런 파동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 3차원에서는 각 스핀이 사방팔방의 이웃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어서, 이런 긴 파장 요동이 아무리 많이 생겨도 그 효과가 유한한 크기에서 멈춘다. 질서가 살아남는다.
- 2차원에서는 붙잡아주는 이웃이 부족해서, 긴 파장 요동의 효과가 시료가 커질수록 계속 누적된다. 아주 먼 거리에서는 결국 스핀 방향이 완전히 뒤섞이고, 장거리 질서가 무너진다.
직관적인 비유로,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바로 앞사람과 같은 방향을 보라"는 지시만 받았다고 하자. 한 사람당 오차는 아주 작아도, 줄이 길어지면 오차가 계속 쌓여 맨 앞과 맨 뒤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운동장처럼 넓게 퍼져 있으면 여러 이웃이 서로를 교정해줄 수 있지만, 2차원은 이 교정이 딱 모자랄 만큼만 가능한 경계선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정리는 자주 오해된다: 이방성의 역할
Mermin-Wagner 정리는 흔히 2차원에서는 자석이 불가능하다로 요약되지만, 이는 틀린 요약이다. 정리가 금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속 대칭성을 가진 경우의 질서다.
실제 결정 속 스핀은 아무 방향이나 동등하게 가리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정 구조 때문에 특정 방향(예: 층에 수직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에너지상 유리할 수 있는데, 이렇게 방향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지는 성질을 자기 이방성(magnetic anisotropy)이라고 한다. 스핀이 선호하는 방향을 쉬운 축(easy axis)이라고 부른다.
이방성의 주된 원천은 스핀-궤도 결합(spin-orbit coupling)이다. 전자는 스핀과 별개로 원자핵 주위를 도는 궤도 운동도 하는데, 스핀-궤도 결합은 이 둘을 서로 엮어준다. 궤도 운동은 원자 배열(결정 격자)의 모양에 영향을 받으므로, 스핀-궤도 결합을 통해 결국 스핀 방향이 결정 격자에 묶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무거운 원소(요오드 I, 텔루륨 Te 등)가 포함될수록 이 효과가 강하다.
이방성이 있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스핀을 쉬운 축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파장이 아무리 길어도 최소한의 에너지를 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스핀파에 에너지 갭(gap)이 열린다"고 표현한다. 공짜 요동이 사라지니, 충분히 낮은 온도에서는 열적 요동이 질서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2차원에서도 장거리 질서가 안정화된다.
스핀이 가리킬 수 있는 방향에 따른 세 가지 모델
물리학자들은 스핀이 가리킬 수 있는 방향의 자유도에 따라 자성체를 세 가지 대표 모델로 분류한다. 이 리뷰의 Fig. 1에서 빨강·보라·청록으로 표시된 것이 바로 이 세 모델이다.
| 모델 | 스핀이 가리킬 수 있는 방향 | 대칭성 | 2차원에서 유한 온도 질서 | 대표 후보 물질 |
|---|---|---|---|---|
| 이징(Ising) | 한 축 위에서 위쪽 또는 아래쪽 두 가지뿐 | 이산(discrete) | 가능 — 1944년 Onsager가 정확히 증명 | FePS₃, CrI₃ |
| XY | 한 평면 안의 아무 방향 | 연속 | 진정한 장거리 질서는 불가능, 대신 BKT 전이가 일어남 | NiPS₃ |
|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 3차원 공간의 아무 방향 | 연속 | 불가능 (Mermin-Wagner 정리) | MnPS₃, Cr₂Ge₂Te₆(이방성이 약함) |
이징 모델은 스핀이 위/아래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어서 조금씩 연속적으로 기울이는 스핀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방향을 바꾸려면 한 번에 뒤집어야 하고 여기엔 확실한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Mermin-Wagner 정리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2차원에서도 유한 온도에서 질서가 생긴다. 앞서 말한 강한 이방성이 있는 2차원 자석이 바로 이 경우다.
BKT(Berezinskii-Kosterlitz-Thouless) 전이란 — 2차원 XY 모델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상전이. 평면 안에서 도는 스핀들은 소용돌이(vortex, 스핀 방향이 한 점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모양)와 그 반대 방향으로 도는 반소용돌이(antivortex)를 만들 수 있다. 저온에서는 소용돌이와 반소용돌이가 짝을 이뤄 묶여 있어서, 진정한 장거리 질서는 아니지만 거리에 따라 아주 천천히 약해지는 준(quasi) 장거리 질서가 유지된다. 온도가 올라가 이 짝들이 풀려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다. 이 발견으로 Kosterlitz와 Thouless는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정리하면, 2차원 자석은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스핀이 가리킬 방향을 결정 격자가 정해주는 2차원 자석은 가능하다 가 올바른 결론이다. 그리고 이 이론을 실제로 검증하려면, 원자 한 층 두께이면서 이방성의 종류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진짜 자성 물질이 필요하다. 바로 여기서 반데르발스 자성체가 등장한다.
반데르발스 자성 물질이라는 무대
이 리뷰는 그래핀이 2차원 물질 연구를 촉발한 것처럼, 자성 원소를 포함한 반데르발스(van der Waals, vdW) 물질이 2차원 자성 연구의 이상적인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정리한다. FePS₃, CrI₃, Cr₂Ge₂Te₆, VSe₂, MnSe₂ 등 2016~2018년 사이 불과 2년 동안 원자층 두께에서 자기 질서가 처음 확인된 물질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논문은 그 흐름을 정리하는 시점에 나왔다.
반데르발스 물질이란 — 층 내부는 강한 공유결합으로 묶여 있지만, 층과 층 사이는 반데르발스 힘이라는 약한 힘으로만 붙어 있는 물질. 책장을 넘기듯, 혹은 페이스트리의 결을 벗겨내듯 층을 떼어낼 수 있다. 실제로 스카치테이프로 벗겨낼 수 있을 만큼 쉽게 박리(exfoliation)되고, 표면에 끊어진 결합(dangling bond)이 없어 격자 크기가 맞지 않는 다른 물질과도 레고 블록처럼 깨끗하게 쌓아 이종접합(heterostructure)을 만들 수 있다. 연필심의 흑연에서 한 층을 떼어낸 그래핀이 대표적이고, 여기에 자성이라는 속성이 추가된 것이 이 리뷰의 주제다.

2차원 반데르발스 자성 물질에서 연구 가능한 물리 현상들. 벌집격자(honeycomb lattice) 위에서 이징(빨강)·XY(보라)·하이젠베르크(청록) 모델의 해밀토니안이 2차원 극한에서 어떻게 거동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게이팅·strain·근접효과·모아레 패턴 등 외부 섭동으로 바닥 상태를 제어할 수 있고, 벌집격자 고유의 밸리(K±) 결합을 통한 빛-물질 상호작용도 기대된다.
Fig. 1의 용어들을 조금 풀어보면 이렇다.
- 해밀토니안(Hamiltonian): 시스템의 에너지를 수식으로 쓴 것. 스핀들이 어떤 규칙으로 상호작용하는가를 적은 규칙서라고 보면 된다. 위 표의 세 모델은 서로 다른 해밀토니안이다.
- 바닥 상태(ground state):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 절대영도 근처에서 물질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상태로, 강자성이냐 반강자성이냐 등이 여기서 결정된다.
- 벌집격자(honeycomb lattice): 원자들이 벌집 모양 육각형으로 배열된 구조. 그래핀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vdW 자성체에서 자성 원자들이 이 모양을 이룬다.
- 게이팅(gating): 트랜지스터처럼 전극에 전압을 걸어 물질 안의 전자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
- strain: 물질을 잡아당기거나 눌러서 원자 간격을 바꾸는 것.
- 근접효과(proximity effect): 서로 다른 물질을 맞붙였을 때 한쪽의 성질(자성, 초전도성 등)이 계면을 넘어 다른 쪽으로 스며드는 현상.
- 모아레(moiré) 패턴: 두 층을 살짝 비틀어 겹치면 원래 격자보다 훨씬 큰 주기의 간섭 무늬가 생기는데, 이 무늬가 전자와 스핀이 느끼는 환경을 공간적으로 바꿔준다.
- 밸리(valley, K±): 벌집격자 물질의 전자 에너지 구조에서 에너지가 낮은 골짜기가 두 군데(K+, K−) 생기는데, 이 두 골짜기는 서로 다른 방향의 원편광 빛에 반응한다. 자성과 결합하면 빛으로 자기 상태를 읽고 쓰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왜 굳이 반데르발스 자성체인가
기존에도 얇은 자성 박막(예: 텅스텐 기판 위에 올린 철 박막 Fe/W(110))은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박막은 기판 원자와 화학결합을 하고, 기판과 원자 간격이 맞지 않아 억지로 늘어나거나 눌린다(격자 불일치에 따른 스트레인). 그래서 관측된 자성이 그 물질 고유의 성질인지, 기판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효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반면 vdW 자성체는:
- 박리해도 물질 고유의 결정 구조와 화학결합이 그대로 유지된다 (기판이 만드는 인공적인 변형이 없다).
- 원소 조합과 구조가 다양해서 자기 이방성을 물질마다 손쉽게 다르게 고를 수 있다. 즉 앞의 표에 나온 이징·XY·하이젠베르크 모델에 해당하는 물질을 각각 찾아 비교할 수 있다. 전기적 성질도 다양해서, 강자성 반도체(Cr₂(Si,Ge)₂Te₆, MSe₂),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금속성 강자성체(Fe₃GeTe₂),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성 반강자성체(MPX₃ 계열), α-RuCl₃처럼 원자 사이 결합 방향에 따라 상호작용이 달라지는(bond-dependent) 특이한 물질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 격자 크기를 맞출 필요 없이 임의의 조합으로 이종접합을 쌓을 수 있어, strain·게이팅·근접효과·모아레 패턴 등 외부 변수로 자기 바닥상태를 조작하는 실험이 가능해진다.
즉 이 물질군은 이징 전이, BKT 전이, Mermin-Wagner 정리 같은 교과서적 이론들을, 실제 결정에서 층수(layer number)를 한 층씩 조절해가며 검증할 수 있는 최초의 현실적인 실험 무대라는 것이다. 벌크(3차원)에서 출발해 층을 하나씩 벗겨내면, 3차원 자석이 2차원 자석으로 바뀌는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어떻게 원자층 하나의 자성을 잰다는 것인가 — 광학적 탐침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측정이다. 원자층 하나는 두께가 1 nm도 안 되고, 박리한 조각의 크기도 수 마이크로미터(머리카락 굵기의 수십 분의 일) 수준이다. 벌크 결정의 자성을 재던 표준 기법 — 시료 전체의 자기 신호를 모으는 SQUID 자기측정이나, 중성자를 쏘아 스핀 배열을 보는 중성자 산란 — 은 이렇게 작은 부피에서는 신호가 너무 약해 쓸 수 없다. 그래서 이 리뷰가 강조하는 것은 레이저를 작은 점으로 모아 쏠 수 있는 광학 기법이다.

이차원 자성의 광학적 탐침. (a) 자기 교환(Jex)과 자화(M)에 의해 스핀업/스핀다운 상태가 갈라지고, 원편광(σ±)에 대한 흡수·반사 차이(원형 이색성)나 편광면 회전(Kerr/Faraday 효과)으로 자화를 측정할 수 있다. (b) 단일층·이중층 CrI3의 극 Kerr 회전각. 단일층은 강자성 히스테리시스를 보이지만, 이중층은 메타자성 전이를 보여 층간 반강자성 배열임을 시사한다. (c, d) Cr2Ge2Te6와 단일층 FePS3의 온도별 라만 스펙트럼 — 자기 전이 온도(TC, TN) 부근에서 포논 모드의 변화가 뚜렷하다.
빛으로 자화를 읽는 원리
빛은 전기장이 진동하는 파동인데, 그 진동 방향을 편광(polarization)이라고 한다. 진동이 한 직선 위에서만 일어나면 선형편광, 진동 방향이 나선처럼 빙글빙글 돌면 원편광이다. 원편광은 도는 방향에 따라 오른손 방향(σ+)과 왼손 방향(σ−) 두 종류가 있다.
자기적으로 정렬된 물질에서는 교환 상호작용(J_ex)과 자화(M) 때문에 스핀업 전자와 스핀다운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서로 달라진다(Fig. 2a). 그리고 스핀-궤도 결합이 있으면 σ+ 빛과 σ− 빛이 서로 다른 스핀 상태의 전자를 우선적으로 들뜨게 한다. 결과적으로 자화된 물질은 오른쪽으로 도는 빛과 왼쪽으로 도는 빛을 서로 다르게 흡수·반사한다. 이 차이를 측정하는 것이 두 가지 대표적인 방법이다.
- 자기 원형 이색성(MCD, magnetic circular dichroism): σ+와 σ− 빛의 흡수(또는 반사) 세기 차이를 직접 잰다.
- Kerr 효과 / Faraday 효과: 선형편광은 사실 σ+와 σ−가 반씩 섞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자화된 물질이 두 성분을 다르게 처리하면, 반사(Kerr)되거나 투과(Faraday)되어 나온 빛의 편광 방향이 살짝 돌아가고 타원형으로 찌그러진다. 이 회전각은 자화의 크기와 방향에 비례하므로, 각도를 재면 자화를 알 수 있다.
CrI₃: 한 층은 강자성, 두 층은 반강자성
이 방법으로 CrI₃와 Cr₂Ge₂Te₆에서 처음 원자층 두께의 자기 질서 증거가 나왔다(Fig. 2b). 그래프를 읽는 법부터 짚어보자. 가로축은 외부에서 걸어준 자기장, 세로축은 Kerr 회전각(≈ 자화)이다.
단일층 CrI₃는 전형적인 히스테리시스(hysteresis)곡선을 보인다. 히스테리시스란 현재 상태가 과거 이력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이다. 강한 양(+)의 자기장으로 자화를 위로 정렬시킨 뒤 자기장을 0으로 줄여도 자화가 위를 향한 채 남아 있고, 반대 방향으로 충분히 센 자기장을 걸어야 비로소 뒤집힌다. 자기장을 올릴 때와 내릴 때 곡선이 다른 경로를 그리며 네모난 고리 모양이 된다. 이렇게 자기장 없이도 자화를 기억하는 것이 강자성체의 결정적인 증거이고, 하드디스크가 정보를 저장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중층 CrI₃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기장이 0 근처일 때는 Kerr 신호, 즉 알짜 자화가 0으로 유지되다가, 특정한 임계 자기장(약 0.6~0.7 T)에 이르면 갑자기 계단처럼 뛰어오른다. 이런 급격한 점프를 메타자성(metamagnetic) 전이라고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렇다. 각 층 내부는 여전히 강자성(층 안의 스핀은 모두 나란함)이지만, 위층은 ↑, 아래층은 ↓로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서 두 층의 자화가 상쇄된다(층간 반강자성). 외부 자기장이 두 층을 반대로 묶어두는 층간 결합보다 세지면, 아래층이 강제로 뒤집혀 두 층이 모두 ↑가 되면서 자화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다. 벌크 CrI₃는 강자성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층 하나 차이로 자기 배열 자체가 바뀐다는 이 결과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라만 분광: 원자의 떨림으로 스핀 질서를 엿보다
또 하나의 축은 비탄성 광산란, 그중에서도 라만 분광(Raman spectroscopy)이다. 물질에 레이저를 쏘면 대부분의 빛은 같은 색(에너지)으로 튕겨 나오지만, 극히 일부는 물질 내부의 진동에 에너지를 조금 주거나 받아서 색이 살짝 바뀐 채 나온다. 이 에너지 차이를 재면 물질 안에서 어떤 떨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포논(phonon): 원자들이 격자 속에서 집단적으로 진동하는 것. 결정의 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 마그논(magnon): 앞서 설명한 스핀파를 양자화한 것. 스핀들의 집단적 흔들림이다.
- 스피논(spinon): 일부 특이한 자성체에서 나타나는, 스핀파가 더 잘게 쪼개진 형태의 들뜸.
라만 분광은 원래 포논을 보는 도구지만, 스핀-궤도 결합을 매개로 마그논 같은 자기 들뜸도 볼 수 있고, 자기 질서가 포논에 남긴 흔적도 잡아낼 수 있다.
단일층 FePS₃의 경우가 그 좋은 예다(Fig. 2d). 네엘 온도 위에서는 하나의 넓은 피크만 보이던 것이, 네엘 온도 아래로 내려가 지그재그 모양의 반강자성 질서가 생기자 네 개의 날카로운 모드로 쪼개졌다. 원리는 이렇다.
- 반강자성 질서가 생기면 스핀 배열의 반복 단위가 원래 원자 배열의 반복 단위보다 커진다(↑↓↑↓에서는 ↑ 하나가 아니라 ↑↓ 한 쌍이 반복 단위).
- 반복 단위가 커지면, 물리학자들이 결정의 진동을 기술할 때 쓰는 파수 공간(브릴루앙 존, Brillouin zone)은 거꾸로 작아지고 바깥 영역이 안쪽으로 접혀 들어온다(zone-folding).
- 라만 분광은 원래 브릴루앙 존의 한가운데 진동만 볼 수 있는데, 접힘 때문에 원래 가장자리에 있어 보이지 않던 진동들이 한가운데로 옮겨와 새롭게 보이게 된다.
즉 “새로운 피크가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반강자성 질서가 생겼다"는 증거가 된다. 겉으로 자화가 0이라 Kerr 효과로는 보기 어려운 반강자성 원자층 하나의 질서를, 라만 분광만으로 잡아낸 첫 사례다.
전기적으로 자석을 만지다: 터널링과 게이팅
광학 측정이 자석을 본다면, 전자소자는 자석을 만진다. CrI₃ 이중층의 놀라운 층간 반강자성 상태는 전기 측정으로도 다시 확인되었다.

2차원 자성의 전기적 측정과 제어. (a) 그래핀 사이에 CrI3를 끼운 터널링 소자의 자기장 스윕에 따른 전도도 — 반강자성/강자성 배열 전환에 따라 전도도가 급격히 바뀐다. (b) 전기장에 따른 이중층 CrI3의 MCD 신호 — 전기장으로 반강자성 상태를 다시 유도할 수 있다. (c) 이온성 액체 게이팅으로 조절한 Fe3GeTe2의 강자성-상자성 전이 온도(TC) — 실온을 넘어선다.
스핀 필터와 터널링 자기저항
실험 구조는 그래핀/CrI₃/그래핀/hBN을 샌드위치처럼 쌓은 것이다. 위아래 그래핀은 전극 역할을 하고, 가운데 CrI₃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다. hBN(육방정 질화붕소)은 전체를 보호하는 절연 덮개다.
고전적으로는 절연체를 사이에 두면 전류가 흐를 수 없지만, 절연층이 원자 몇 층 두께로 충분히 얇으면 양자역학적 터널링(tunneling)으로 전자가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공이 언덕을 넘을 에너지가 없어도 확률적으로 반대편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여기서 CrI₃는 스핀 필터로 작동한다. 강자성으로 정렬된 CrI₃ 한 층은, 자신의 자화 방향과 같은 스핀을 가진 전자는 비교적 잘 통과시키고 반대 스핀의 전자는 강하게 막는다. 이제 이중층의 두 경우를 비교해보자.
- 반강자성 배열(↑층 + ↓층): 첫 번째 층은 ↑ 전자만 통과시키고, 두 번째 층은 ↓ 전자만 통과시킨다. ↑ 전자는 두 번째 층에서, ↓ 전자는 첫 번째 층에서 막히므로 원리적으로 전류가 거의 흐르지 못한다.
- 강자성 배열(↑층 + ↑층): ↑ 전자는 두 층을 모두 통과할 수 있다. 전극(그래핀) 전자의 절반가량이 지나갈 길이 열리므로 전류가 크게 흐른다.
실제로 자기장을 걸어 반강자성→강자성으로 스위칭시키면 전도도가 급격히 뛰어오르는 것이 관측되었다(Fig. 3a). 자기 배열에 따라 저항이 크게 바뀌는 이 현상을 터널링 자기저항(TMR, tunneling magnetoresistance)이라고 한다. TMR은 이미 하드디스크 읽기 헤드와 차세대 메모리(MRAM)의 핵심 원리로 쓰이고 있어서, 원자 몇 층짜리 소자에서 큰 TMR이 나왔다는 것은 초소형 메모리·센서 소자로의 응용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광학(Kerr)과 전기(TMR)라는 전혀 다른 두 방법이 이중층 CrI₃는 층간 반강자성이라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전기장으로 자석을 조작하다
더 나아가 자기장이 아니라 전기장으로 자기 상태를 조작한 실험도 나왔다. 자석을 자기장으로 조작하려면 코일에 큰 전류를 흘려야 하지만, 전기장은 전극에 전압만 걸면 되므로 에너지 소모가 훨씬 적다. 그래서 전기장으로 자성을 제어하는 것은 저전력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전자의 전하뿐 아니라 스핀까지 정보 처리에 쓰는 기술)의 오랜 목표다.
hBN 절연층을 사이에 두고 게이트 전극을 붙인 이중층 CrI₃ 구조에서, 전기장이나 도핑(전자를 더 넣거나 빼는 것) 정도를 조절하면 MCD 신호가 이력현상을 보이며 점프한다(Fig. 3b). 전기장이 유도한 도핑이 강자성 쪽 교환 상호작용을 강화해, 반강자성→강자성으로 넘어가는 메타자성 전이의 임계 자기장을 낮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적절한 자기장 근처에서는 전압만으로 두 자기 상태 사이를 오갈 수 있다.
게이팅으로 실온 강자성을 만들다
가장 실용적으로 인상적인 결과는 Fe₃GeTe₂에 이온성 액체 게이팅(ionic liquid gating)을 적용한 사례다(Fig. 3c).
자성 소자를 실제로 쓰려면 실온(약 300 K, 27 °C)에서 자석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2차원 자성체는 영하 200 °C 이하에서만 자성을 보인다. Fe₃GeTe₂ 박막의 원래 퀴리 온도도 실온보다 한참 낮다.
이온성 액체는 상온에서 액체 상태인 소금(양이온과 음이온의 혼합물)이다. 이 액체를 시료 위에 올리고 전압을 걸면 이온들이 시료 표면으로 몰려와, 일반적인 고체 절연막 게이트보다 훨씬 많은 전자를 시료에 밀어넣거나 뺄 수 있다. 전자 수가 크게 바뀌면 교환 상호작용의 세기도 바뀐다.
게이트 전압을 조절하자 전이 온도(T_C)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비단조적으로(non-monotonic) 변했고, 어느 지점에서 실온을 넘어서는 강자성이 구현되었다. 이는 도핑이 페르미 준위(전자가 채워진 가장 높은 에너지 수위)를 새로운 에너지 띠까지 밀어올려 자성의 성격이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다만 저자들은 리튬 이온이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결정 층 사이로 실제로 끼어들어가는(intercalation) 과정이 함께 일어나므로, 순수한 전자 수 변화 외에 결정의 무질서·스트레인 효과가 섞여 있을 가능성도 함께 지적한다.
앞으로 가야 할 네 방향
리뷰는 마지막으로 이 분야가 나아갈 방향을 네 갈래로 정리한다(원문 Table 1).
| 방향 | 핵심 주제 |
|---|---|
| 새로운 물질 | 실온 이상의 강자성·반강자성 물질, 멀티페로익 물질, 양자 스핀(S=1/2) 물질, 강한 스핀-궤도 결합을 갖는 4d/5d 원소 기반 물질, 비전통 초전도체 |
| 근본적 질문 | 층수에 따른 이징/XY/하이젠베르크 모델의 요동 변화, BKT 전이와 소용돌이-반소용돌이 쌍, 기판·캡핑층 계면 효과, 초전도체·강유전체와의 근접효과, 스핀-밸리 결합 |
| 소자·응용 | strain·게이팅을 통한 제어, 이종접합, 자기 센서, 테라헤르츠 자기광학 소자, 스핀트로닉스, 위상 양자컴퓨팅 |
| 양자·위상 상태 | 양자 스핀 액체, 외부 변수로 유도되는 양자 임계현상, 2차원 비전통 초전도, Kitaev 상호작용과 분율화(fractionalization), 양자 스핀 홀 효과, 스커미온 |
표에 나온 낯선 용어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 멀티페로익(multiferroic): 자성과 강유전성(전기적 분극이 스스로 정렬되는 성질)처럼 두 가지 이상의 질서를 동시에 갖는 물질. 전기로 자성을, 자기로 전기를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 양자 스핀(S=1/2): 스핀의 크기가 가장 작은 경우. 스핀이 작을수록 고전적인 바늘로 볼 수 없고 양자역학적 요동이 강해져, 기묘한 양자 상태가 나타나기 쉽다.
- 4d/5d 원소: 루테늄(Ru), 이리듐(Ir)처럼 주기표 아래쪽의 무거운 전이금속. 스핀-궤도 결합이 매우 강하다.
- 스커미온(skyrmion): 스핀들이 소용돌이처럼 감겨 만든 작고 안정한 매듭 모양의 구조. 작은 전류로 움직일 수 있어 차세대 저장소자 후보로 주목받는다.
- 위상(topological): 모양을 조금 비틀거나 늘려도 변하지 않는 성질(도넛과 머그컵은 구멍이 하나라는 점에서 같다). 위상적으로 보호되는 상태는 외부 잡음에 강해서 양자컴퓨팅에 유리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방향: Kitaev 양자 스핀 액체
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마지막 양자·위상 상태 방향이다.
먼저 양자 스핀 액체(quantum spin liquid)란, 절대영도까지 식혀도 스핀들이 어느 방향으로도 정렬하지 않고 계속 요동하는 상태다. 물이 얼음이 되지 않는 것처럼 스핀이 “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액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단순히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스핀들이 서로 양자역학적으로 강하게 얽혀(entangled) 있는 매우 특이한 상태다.
스핀이 정렬하지 못하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 좌절(frustration)이다. 모든 이웃과의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세 명이 삼각형으로 앉아 “모두 옆 사람과 반대 방향을 보라"는 규칙을 받으면, 두 명까지는 가능해도 세 번째 사람은 누구와 맞출지 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vdW 자성체는 자성 원소가 벌집격자를 이룬다. 벌집격자에서 각 원자는 세 방향으로 뻗은 결합을 가지는데, 강한 스핀-궤도 결합 아래에서 인접한 두 자성 이온이 리간드 원자를 사이에 두고 변(edge)을 공유하면 Kitaev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Kitaev 상호작용의 특징은 결합 방향마다 스핀의 서로 다른 성분끼리만 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방향의 결합은 스핀의 x 성분끼리, 두 번째는 y 성분끼리, 세 번째는 z 성분끼리 정렬시키려 한다. 한 원자의 스핀은 세 결합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으니 강한 좌절이 생기고, 스핀은 정렬하지 못한 채 양자 스핀 액체가 된다.
Alexei Kitaev가 2006년 제안한 이 모델은 정확하게 풀리는 드문 모델인데, 그 해에 따르면 이 상태에서는 스핀 하나를 뒤집는 들뜸이 더 작은 조각들로 쪼개진다(분율화, fractionalization). 그 조각 중 하나가 마요라나 페르미온(Majorana fermion) — 자기 자신이 곧 자신의 반입자인 기묘한 입자 — 처럼 행동한다. 마요라나 입자는 외부 잡음에 강한 위상 양자컴퓨팅의 기본 단위 후보로 꼽힌다.
현실의 물질에서는 Kitaev 상호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하이젠베르크 교환 상호작용과 기타 이방성 교환 상호작용이 함께 경쟁한다. 이 경쟁의 균형을 층수·strain·게이팅 같은 손잡이로 조절해 Kitaev 스핀 액체 쪽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이론 속에만 있던 상태를 실제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α-RuCl₃가 이미 이 경쟁의 유력한 후보로 언급된다.
정리하며
이 논문은 새로운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논문이 아니라, 막 태동한 분야의 지도를 그리는 리뷰다. 그럼에도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Mermin-Wagner 정리는 “연속 대칭성을 가진 2차원 자석은 유한 온도에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 결정은 스핀-궤도 결합을 통해 이방성을 가지므로 이 제약을 피해갈 수 있다. 그리고 반데르발스 자성 물질은 층수라는 손잡이 하나로 2차원 자성의 교과서적 모델들 — 이징, XY, 하이젠베르크, 더 나아가 Kitaev — 을 실제 결정에서 하나씩 검증할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CrI₃ 이중층의 층간 반강자성처럼 층 하나 차이가 자기 배열 자체를 뒤바꾸는 현상이 광학(MCD/Kerr)과 전기적 측정(TMR) 양쪽에서 독립적으로 재현되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두 탐침이 같은 결론에 수렴했다는 것은 이 분야가 더 이상 그럴듯한 해석이 아니라 검증된 물리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2018년 이 리뷰가 나온 이후 실온을 넘는 강자성체, Kitaev 스핀 액체 후보 물질, 전기적으로 완전히 스위칭 가능한 자성 소자 등이 실제로 뒤따라 나왔다는 점에서, 이 리뷰가 그린 지도는 꽤 정확했던 셈이다.
용어 정리
| 용어 | 한 줄 설명 |
|---|---|
| 스핀(spin) | 전자가 가진 아주 작은 자석 같은 성질 |
| 교환 상호작용(J_ex) | 이웃한 스핀끼리 방향을 맞추게 하는 양자역학적 상호작용 |
| 강자성 / 반강자성 | 이웃 스핀이 같은 방향(↑↑) / 반대 방향(↑↓)으로 정렬한 상태 |
| 상자성 | 스핀이 무작위로 흩어져 질서가 없는 상태 |
| 퀴리 온도(T_C) / 네엘 온도(T_N) | 강자성 / 반강자성 질서가 사라지는 온도 |
| 장거리 자기 질서 | 시료 전체에 걸쳐 스핀 배열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상태 |
| 열적 요동 | 온도에 의해 생기는 무작위한 흔들림 |
| 연속 회전 대칭성 | 스핀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든 에너지가 같은 성질 |
| 스핀파 / 마그논 | 스핀 방향이 파도처럼 천천히 변하는 집단적 흔들림 / 그 양자 |
| Mermin-Wagner 정리 | 연속 대칭성·단거리 상호작용을 가진 2차원 계는 유한 온도에서 장거리 질서를 가질 수 없다는 정리 |
| 자기 이방성 | 스핀 방향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지는 성질 — 2차원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 |
| 스핀-궤도 결합 | 전자의 스핀과 궤도 운동이 엮이는 효과 — 이방성의 주된 원천 |
| 이징 / XY / 하이젠베르크 모델 | 스핀이 한 축 / 한 평면 / 3차원 공간의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모델 |
| BKT 전이 | 2차원 XY 계에서 소용돌이-반소용돌이 쌍이 풀리며 일어나는 상전이 |
| 반데르발스 물질 | 층 사이가 약한 힘으로만 붙어 있어 한 층씩 벗겨낼 수 있는 물질 |
| MCD / Kerr 효과 | 자화된 물질이 원편광을 다르게 흡수하거나 편광 방향을 돌리는 현상 |
| 히스테리시스 | 상태가 과거 이력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 — 강자성의 대표적 증거 |
| 메타자성 전이 | 자기장에 의해 반강자성 배열이 갑자기 강자성 배열로 바뀌는 전이 |
| 라만 분광 / 포논 | 빛의 미세한 에너지 변화로 물질 내부 진동을 보는 기법 / 격자 진동의 양자 |
| 터널링 자기저항(TMR) | 자기 배열에 따라 터널링 전류가 크게 달라지는 현상 |
| 이온성 액체 게이팅 | 액체 상태의 이온으로 시료에 대량의 전자를 넣거나 빼는 기법 |
| 양자 스핀 액체 | 절대영도에서도 스핀이 정렬하지 않고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상태 |
| Kitaev 상호작용 | 결합 방향마다 스핀의 서로 다른 성분끼리 맞추려는 상호작용 |
